*본 칼럼은 2009년12월1일 울사모에 게재한 것으로 현재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츠시마(初島)에서의 점심
내 고향이 울릉도(鬱陵島)임을 잘 알고 있는 지인이 아타미 앞의 작은 섬 하츠시마(初島)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는데 일본을 갈 때마다 내내 하츠시마가 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내게 한번쯤 다녀와 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은근한 권유가 있었을까? 아타미(熱海)에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말에 이번 출장길에는 기어코 다녀오리라고 마음 먹고 지난 11월19일에 880명 정원의 ‘이루바캉스 3세호’라는 긴 이름의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인구 수백 명도 아니 되는 조그만 섬에 연간 백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는데 얼마나 멋진 곳인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 선원의 설명으로는 전체가 4km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의외로 자그만 섬이어서 약간 실망하였으나 기름 한 방울 떠있지 않고 깨끗한 하츠시마 항을 보고는 좋은 섬에 잘 왔구나 하고 위안을 했다.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서 섬 일주도로는 조용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해안가 산책로는 바다와 이어져 있고 숲이 울창하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산림욕이라도 하는 듯 내내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주 반갑고 낯익은 꽃도 보였다. 울릉도 지척에 깔려있는 노란 ‘털머위’ 였다. 꽃 생김새가 약간 작은 것 같았으나 울릉도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이 곳 일본의 태평양 쪽에 있는 섬에도 울릉도에 있는 털머위가 있다니 반갑고 신기했다.
남국의 정취가 풍기는 소철과 용설란 등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이 오랜 파도와 부딪치며 견뎌 온 모습이 역력했다.
하츠시마 아일랜드 리조트에는 풀장과 태평양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해수탕, 작은 식물원과 열대 나무로 쉼터를 만들어놓은 ‘아시아 가든’, 젊은이들이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자연체험시설인 ‘SARUTOBI’, 숙박시설이 완비된 ‘아이랜드 캠프빌라’등을 깔끔하게 잘 다듬어 놓았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시장기가 돈다. 내게 여행의 또 다른 의미는 뭐라고 해도 색다른 맛을 즐기는 것이다. 해안가 쪽으로 같은 모양의 식당들이 열 채 가까이 늘어서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느 식당을 고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첫 번째 집을 지나 세 번째 식당의 수족관에 소라와 바다가재가 싱싱해 보여 이 곳을 정하기로 하고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오늘은 미안합니다. 전 좌석이 예약이 되어서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 냅킨과 젓가락이 전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걸 보니 전 좌석 예약이 맞긴 맞는가 보다.
제일 첫 번째 ‘매가네 마루’라고 쓰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2,100엔이라고 쓰인 생선 정식이었다.
열 평 남짓한 조그만 식당 안에, 테이블은 방 안쪽으로 네 개와 의자가 있는 테이블 두개가 전부다. 천황폐하와 도미탁본 정도 이외에는 특이한 장식도 없다. 아주 평범한 시골의 분위기다.
우선 시원한 맥주 한잔과 사케 1호(소형 병)를 시키고 바다가재(이 곳 지역에서 잡히는 ‘이세에비(伊勢海老)’라는 약간 작은 가재)도 한 마리 주문했다. 조금 있어 주문한 식사가 차례로 나왔다. 먼저 나온 ‘이세에비’를 회로 먹은 후에 껍질을 된장국에 끓여서 나왔는데 국물이 정말 시원했다.
트레이에 담겨 나온 정식을 보자.
볼락 조림 한 마리가 통째로 별도의 접시에 나왔다. 전갱이 한 마리를 다섯 살점으로 토막 내어 회로 내놓고 살을 발라 낸 몸체는 머리와 꼬리부분을 대나무 꽂이로 반원모양으로 구부려서 멋을 내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오징어 몇 점, 새우 한 마리, 방어회 세 조각으로 전체를 세팅하고 오른쪽에 소라 한 개를 대나무 바구니에 잘게 쓸어서 담아냈다. 물론 생 고추냉이(와사비)와 감자튀김, 단무지 배추절임 약간과 밥도 따끈하게 만들어 내 와 김이 모락모락 했다.
이 정식은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식사다. 일본에서 먹으니 일식이라고 할 수 있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먹는 한국 식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먹는 순간부터 무엇 때문일까 묘하게도 아주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재료가 우선 싱싱한 느낌이 들었고 깔끔하고 정성이 깃들어 보여 식욕을 돋우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종업원들의 움직임까지도 문을 나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고향이 울릉도여서인지 모르겠으나 난 어디를 가던 늘 울릉도의 그것과 비교하는 묘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또 한 번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 수더분한 시골 분위기의 ‘매가네 마루’ 식당도 내 고향의 어느 식당과 다를 바 없다. 소라도 있고, 오징어, 전갱이, 볼락도 다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울릉도에 없단 말인가? 왜 울릉도의 식당 주인들은 이 정도로라도 맛깔스럽게 음식을 내 놓지 못할까? 뭐 이런 것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공연히 짜증스러워지는 것이다.
제주도가 바가지 상혼 철폐, 고비용 구조 및 불친절 이미지 개선을 추방하여 금년에 6백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바가지 횡포와 불친절과 고비용이 만연한 울릉도를 걱정하기에 앞서 음식이라도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차별화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음식보다 좀 더 맛깔스럽게 달리 만들 수는 없을까?
해마다 울릉군에서 실시하는 ‘향토음식 개발경진대회’에서 개발된 음식이 얼마나 잘 보급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특이한 개발도 좋으나 기왕에 있는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깔끔하게 만들 수 있도록 울릉군에서 몇 개의 식당과 협약하여 약간의 예산지원과 컨설팅, 교육을 마련한다면 국제관광섬 만들기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시군 경쟁력은]<상>경쟁력 어디서 나오나
권해상 지역발전위원회 기획단장은 “지표 결과를 지역발전 전략에 반영하고 지역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과 컨설팅,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 2009-12-01)
2009년1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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