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대변신> 에피소드 2
2023년08월12일
CNN이 두 번 놀랄 촛대암 해안산책로
촛대암 산책로의 스카이로드, 울릉도 관광지 중 가장 핫한 바다 위를 걷는 다리가 완공돼 촛대암 해안지질공원과 함께 울릉도에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울릉군은 저동 촛대암 해안 지질공원 산책로에 바다 위 174m를 걸을 수 있는 다리를 최근 완공했다. 이 다리 한가운데 오징어모형으로 포토존 광장을 만들어 사진을 촬영해도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했다. 특히 아름다운 야간 조명을 다리에 설치, 야간에도 산책할 수 있는 바다 위에 새로운 다리가 생겨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무료한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마련된 셈이다.(2023년7월27일 경북매일)
행남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저동항의 모습은 유럽 어느 나라의 그림엽서에 나올만한 한 폭의 그림이다. 멀리 촛대바위가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내밀고 태평양을 향해 우뚝 서있으며 항구 안쪽으로는 어선들이 밤새 오징어잡이에 지치기라도 한 듯 올망졸망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졸고 있다. 갓 잠에서 깨어난 듯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여객선이 흰 거품을 뿜어내며 뱃머리를 육지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색색의 맑고 푸른 바다는 저동항으로 이어지는 일곱 개의 무지개다리와 어우러져 멋진 공간연출을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내가 보았던 행남등대에서 내려다본 저동항 주변 풍경이다.
내가 어렸을 적 예전에는 그랬다. 도동에서 행남등대로 가려면 오로지 울릉군청 옆으로 나있는 살구남 길이 유일했다. 꽤나 가파른 고갯길을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가면 멀리 바다가 보였다. 거기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건너편 저쪽 큰 바위 사이에 화장터가 있어 회색 연기가 피워 오르고 했던 곳이다. 난 친구 윤영수와 백제원이 이곳에 살고 있어 어렸을 적 몇 차례 다녀온 적도 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낚싯대를 들고 살구남에 자주 찾아갔었다. 낚싯줄을 던지면 주로 잡히는 것이 질배미(그물베도라치)였다. 낚싯줄만 드리우면 삽시간에 미끼를 낚아채던 놈들이다. 미끌미끌하고 뱀같이 생겨 징그러워서 우린 재수 없다고 바위에 패대기치곤 했던 물고기다. 낚시가 지겨우면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면서 여름방학을 보내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뿐만 아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고향에 왔을 때 살구남 웅퉁개에서 초등학교 동기생들 수십 명이 처음으로 동기회를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홍합과 전복을 따고 들고 간 솥에 바닷물로 홍합밥을 짓고 노래 부르며 놀던 그곳도 ‘사꾸나미’(尺浪)라고 불렸던 ‘살구남’이었다. 마을입구에 큰 살구나무가 있어 사구너미라고 했다던가? 마을주위가 뱀 아귀처럼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사구남(蛇口南)이라고 했다던가? 친구의 집 옆으로 빽빽이 나있는 조릿대 같은 시누대 숲 사이를 빠져나와 조금 오르면 바로 지척이 행남등대였다.
도동 해안가 좌안도로에서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3.7km 중간에 있는 곳이 행남등대다. 지금이야 도동항 터미널이 들어서고 살구남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일제강점기시기에 만들어진 등대가 있었고 우린 이곳에서 망치어(망상어)낚시를 즐겼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낚시는 아마 이 망치낚시가 유일했던 것 같다. 난 이때 고기 뱃속에서 새끼가 나오는 것을 처음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었다. 끊어진 해안도로에서 이십 여 미터 떨어져있는 작은 바위섬인 ‘딴바우’가 우리들 놀이터였다. 지금 그 바위는 터미널 근처 어딘가에 묻혀있겠지만 여름이면 우린 빨리가기와 물속에서 서로를 빤히 쳐다보며 누가 오래 버티는지 내기하던 곳이기도 했다. 우린 이곳에서 수영을 배웠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울릉도식 수영연습 첫 단계는 굵고 큰 통나무를 바다에 던져놓고 아이를 물속으로 빠뜨리는 교습방법이다. 보통 ‘시라’라고 불리는 통나무인데 배를 뭍으로 끌어올릴 때 배 바닥에 까는 나무다. 배에 쇠줄을 묶고 일종의 지렛대인 돈끼라고 불리던 장치로 배를 끌어올릴 때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헤엄 못 치는 아이들이 통나무를 잡아야 살 수 있기에 안간힘을 쓰면서 절로 배우게 하는 것이었다.
등대 뒤편 ‘딴바우’ 왼쪽은 바닷물 색이 검고 짙게 보여 겁이 날 정도였다. 오랜 세월 침식된 바위 안쪽은 보는 것만으로도 괴물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아 어둡고 무서웠다. 뱃살이 너덜너덜하게 뜯겨나간 큰 고래가 밧줄에 묶인 채 파도에 출렁이던 곳이기도 하고 인분을 버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당시는 하수처리 시설이 없어 똥지게꾼들이 일상으로 부어놓던 인분처리장이었던 셈이다. 바로 이곳에 버렸고 주위에는 인분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울릉병원에 근무하던 이종진이와 함께 유년기부터 궁금했던 이 해식굴(海蝕窟)의 존재를 캐고 싶었다.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는 구멍이 있다느니 완전히 막혔다느니 소문만 무성하던 때라 덤벼보고 싶었다. 마침 체격 좋고 몸도 날렵한 멋쟁이 종진이와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푸르다 못해 시꺼먼 색깔의 바다 속은 무서웠다. 물 밑에서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다리를 당길 것 같은 공포감도 들었다. 내가 앞서고 종진이가 뒤따르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몇 차례 반복하며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희미한 빛줄기가 보였다. 바위를 때리는 물소리도 철썩거렸다. 순간 공포감이 사라지며 드디어 해냈다는데 서로를 격려하며 기뻐했다. 행남산책로 초입의 작은 쇠다리 안쪽 깊이 들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가 빠져나왔던 출구는 지금도 그대로인 채 벽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는 일정한 운율로 이어지며 그곳에 남아있다.
이곳을 연결하여 행남산책로가 만들어졌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대 공사였다. 도동항에서 살구남을 거쳐 저동항까지 가는 실로 험난한 공사였다. 직벽(直壁)으로 된 해안의 돌을 깎아 길을 만들고 크고 작은 구름다리를 만들어 연결해야했다. 현수교 같은 멋진 다리도 놓여있다. 해안지질공원산책로이면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현무암의 생성 상태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해안산책로 초입에 있던 용궁이라는 식당이 해안절경을 앗아버린 것 같아 몹시 안타까웠었는데 지난 해 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모두들 공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산책길을 어느 한 사람이 독차지하여 지저분하게 운영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관광을 지향하는 울릉군으로서 좋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2004년 60명의 독도전사가 릴레이로 울릉도~독도수영종단을 28시간 만에 성공했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국제사회와 일본에 알리고 독도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퍼포먼스였다. 2005년 8월에는 여성 33인이 울릉도~독도수영종단을 추진하여 24시간의 기록을 세운 바도 있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2016년10월 바로 이곳에 건립했던 기념비가 2020년9월 태풍 마이삭으로 유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2023년6월 남한권 군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여 유실된 기념비를 다시 세워 독도수호를 위한 작은 마중물의 흔적을 되살려놓았다.
살구남을 지나 행남등대 아래 직벽에 만들어진 스릴만점의 54m 나선형 계단을 빙빙 돌아 내려오면 무지개 구름다리가 장관을 이룬다.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언제나 찾던 곳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긴장감 속에 밖을 나서면 촛대암이 보인다. 2009년 정윤열 군수가 추진한 촛대암 해안산책로였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태풍으로 인해 일곱 가지 무지개 색 구름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낙석으로 인해 파손이 되는 등 녹슨 철강 다리는 수년간 관광객을 외면한 채 내 팽개쳐있었다. 소라계단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채 멈춰서고 말았다.
포항과 부산 송도해수욕장에도 해상 스카이워크가 있으나 이번에 만들어진 촛대암해안도로의 해상 스카이힐링로드는 이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꿈의 다리로 변모했다. 해안도로 쪽 구름다리에는 낙석 방지를 위해 튼튼한 지붕도 만들어놓았다. 174m 길이의 다리 한가운데는 오징어 모양의 포토존이 있어 360도 돌아가며 아름다운 풍광과 야간조명 속에 어화(漁火) 촬영도 가능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두었다. CNN방송이 한국에 가면 꼭 가 봐야할 곳이라고 극찬을 했다는 바로 그 산책로이며 새로 태어난 해상다리다. 2009년에 개설된 전국 최초의 해안지질공원 산책로에 새로운 해상다리가 2023년7월 세계 속의 명물로 탄생했다.
@2023년8월12일
*사진: 경북매일 김두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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