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20-
‘에비앙’이 울고 갈 먹는 샘물 ‘울림워터’의 탄생
울릉도는 ‘3무(無) 5다(多)의 섬이라고 한다. 3무(無)는 도둑, 뱀, 공해이고 5다(多)는 물(水), 미인(美), 돌(石), 바람(風) 그리고 향나무(香)다. 맑은 공기와 물과 미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어수친(魚水親) 같은 밀접한 관계다.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피부도 울릉도의 청정공기와 물이 만나면 매끄럽고 윤택이 난다. 바로 이 물이 ’ULIM 울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한국 시장에 나타났다. 울릉도산 생수가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팝업 행사를 시작으로 드디어 대장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2024년 12월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개최된 울림워터의 팝업행사와 홍보용 이미지
이 물은 울릉도 나리분지 아래 해발 350m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189호인 성인봉 원시림 속 화산 암반에서 솟아오른 지표 노출형 용천수다.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나리분지에서 눈과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30여 년의 긴 자연정화를 거쳐 끊임없이 땅 위로 솟구쳐 나오는 청정 1급수로서 나트륨, 칼륨, 칼슘 등 다양한 무기물질을 함유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 용천수는 1일 평균 2만여 톤(1.5톤~3.5톤) 내외로 용출되고 있으며 그간 추산수력발전소의 발전 용수로 9천여 톤과 상수도 용수로 3천여 톤이 사용되고 나머지 1만여 톤 이상은 바다로 흘려보내는 실정이었는데 이마저 수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됨으로 인해 많은 양을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 생수 생산에 필요한 수량은 고작 1천여 톤이라고 한다. 지금도 천부항을 조금 벗어난 곳에는 바다로 연결된 대형 관으로 쉼 없이 샘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 울릉도 북면 나리에 있는 울릉샘물 용출수와 (아래) 아직 봄이 오지 않은 2월임에도 추산에서 흘러나온 샘물이 끊임없이 바다로 나가고 있다.
울림워터의 발원지인 추산수원지(錐山水源池)는 아주 오랜 옛날 힘센 장수가 마을 사람들과 싸움하다 죽고 말았는데 이 장수의 흘린 피가 지금의 수원지가 되었다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지만 1958년 초등학교 6학년 졸업여행이 섬 일주였는데 당시 우리 일행은 추산 숲속을 지나면서 보글보글 솟구치는 샘물을 발견하고 너도나도 돌을 던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군가가 돌을 던지면 돌이 튀어 오른다고 일러주었던 것 같다. 그랬던 이 샘물이 이제 맑은 청정수로 변신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다니 그 시대를 살았던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울릉도에는 약 스무 개소에서 용천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나리분지에서 울릉도 전역으로 흘러내리는 지표수다. 저동리 내수전에 있는 한국전력 위의 석산 아래 물골도 그중 하나이다. 거기에서 내려온 샘물은 내 친구 전태봉의 집까지 흘러내려 놀러 갈 때마다 늘 맑은 물이 웅덩이에 철철 넘쳐있었다. 한여름에도 물속에 담겨 있는 항아리에 시지 않은 김치를 맛볼 수 있었던 그 샘물이 지금도 그리운 곳이다.
이같이 좋은 물을 상품화하려는 선각자도 일찌감치 있었다. 저동리에 거주하던 동해특산의 김상백 대표가 그랬다. 그는 1983년 아시안 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을 즈음 생수의 사업성을 일찍 간파하여 이곳 석산 물을 채취해 서울 홍릉에 있던 KIST를 찾아가 수질검사를 의뢰하였다고 한다. 물론 최고의 물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생수 개발사업은 지속되지 않았다.

화산암으로 형성된 울릉도의 단면도. 울림워터는 화산암반에서 31년 동안 정화된 물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땅 위로 솟아오른 '지표노출형 용천수'를 담은 먹는샘물이 바로 울림워터다.
음수는 수돗물만으로도 충분한데 지하수까지 뽑아 판매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수 시판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던 때가 있었다. 바로 88올림픽을 전후한 때였다.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선수들을 위한 생수 시판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적이 있으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시 판매가 금지되었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된다든가 지하수 고갈과 환경오염이 우려된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더해진 결과였다. 심지어 생수 시판과 관련한 공청회가 시민단체와 시의회에서 열리기도 했다.

생수판매를 위한 토론회 및 생수판매를 허용한다는 대법원 판결 내용
그러나 1989년 수돗물의 중금속 검출 소동과 1991년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 원액이 영남지역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키는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서 깨끗한 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고 업계의 지속적인 시판 허용 요청으로 1994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생수의 국내 시판을 공식 허용하게 되었다.
생수 판매가 허용된 지 30여 년이 지난 2024년 현재 59개 업체 210여 개 브랜드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브랜드별 시장점유율을 보면 제주 삼다수: 40.7%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13.9% 농심 백산수: 8.7% 해태 평창수: 4% 하이트진로 석수: 2% 등이며 시장 규모는 2021년 1조2천억 원, 2023년 2조7천4백억 원이며 2024년에는 3조1천7백억 원으로 예상되어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수산물 이외에 별다른 생산품이 없는 울릉군으로서는 이 용천수 사업을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하고자 2010년 6월에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2013년 환경부로부터 먹는샘물의 허가를 득한 후 2015년 4월에 사업자 공모를 하여 ㈜LG생활건강이 선정됨으로써 2019년 민관합작 법인인 ’울릉샘물‘이 총 520억원(LG생활건강 500억원 87%, 울릉군 20억원 13%))의 출자금으로 설립되었다.


(위)완공된 울릉샘물 공장과 (아래)LG생활건강과 울릉군의 업무협약 약정식
2010년 환경부가 ’먹는 물 관리법 시행규칙‘에 용출수를 추가함에 따라 곧바로 생산이 예상되었으나 정윤열, 최수일, 김병수 군수에 이르기까지 정부로부터 계속 승인이 보류되었다. 환경부는 상수도 보호구역 내에서는 수익 사업이 불가능하다, 수원지 내의 취수시설과 취수방법 등에 문제가 있다, 수도시설을 거쳐 공급되는 원수·정수는 모두 수돗물에 해당이 된다, 도수관로에서 분기된 관을 통하면 아니 된다 등 여러 이유로 계속 승인을 거부해 왔으나 남한권 군수의 끈질긴 집념으로 감사원, 환경부, 경북도 등 다양한 대관업무 활동을 펼침으로써 2024년 4월 마침내 경상북도로부터 먹는샘물의 제조허가를 득하게 되었다.

롯데백화점 본점 생수코너에서 판매되고 있는 울림워터
고향의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판매처가 어디인지 여기저기 수소문했으나 알 수 없어 난감하던 차에 LG생활건강의 자회사인 한국코카콜라사에 연락이 닿아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드디어 추산 용천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ULIM WATER 울릉도 화산암반 31년 자연정화” 라고 쓰인 깔끔한 라벨이 붙어있고 생수병 아래에는 울릉도 형상의 조각이 디자인 되어있었다. 유통기한은 6개월, 450ml 작은 병으로 한 개에 2천 원이었다. 가히 프리미엄급 가격이다. 일반 생수인 삼다수가 같은 용량에 500원 정도이니 4배나 되는 고가였다. 동네에서 늘 생수를 사 마시는 나로서는 울림워터를 일상으로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었다. 일류호텔이나 유명백화점에만 판매하는 고급 생수라니 그림의 떡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어서다.
그러나 프리미엄 생수 시장의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194억 4천만달러(약 26조301억원)나 되고 연평균 7%씩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대형 생수 컨테이너선이 사동항에 입항하여 울림워터를 가득 싣고 해외로 직수출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에비앙도 울림워터와 같은 용천수다. 알프스의 고산에서 녹은 눈과 산지의 빗물이 산맥을 흐르며 두꺼운 빙하의 퇴적물을 통과해 만들어진 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프랑스의 에비앙(evian)이나 캐나다의 어스워터(earth)생수와 휘슬러(whistler)의 빙하수는 해상운임과 관세를 물고서도 국내시판 가격이 울림워터에 비해 반값인 점을 감안 하면 단기간에 점유율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걱정도 앞선다.
제주도는 물론 육지의 지하수 부족과 먹는샘물 수질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고 수입 생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울림워터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세계 1위의 에비앙이 울림워터로 인해 울고 갈 날도 머지않을 것 같아 공연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202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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