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엄청 바쁜 날
백수가 엄청 바쁜 날
오늘은 미뤄 두었던 집안일을 처리하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오갔다. 요즘은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은 편이라 아예 메모를 해두고 하루의 일정을 조정한다.
이식한 꽃들과 수국에 물을 주고 나서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왔던 싱크대 밑을 정리하여 냄새를 방지하는 트랩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요즘 한창 선전을 하고 있는 ‘골드트랩’이라는 것인데 지난주에 사서 화장실에 설치를 했는데 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고 집사람이 기뻐한다. 싱크대도 냄새가 난다고 하여 오늘 작업하기로 한 것이다.
안을 보니 호스구멍이 너무 좁아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호스를 열어 안에 끼어있는 음식찌꺼기를 칫솔로 몇 차례 닦아내는데 호스를 열어둔 걸 깜박하고 물을 트는 통에 바닥이 물바다가 되었다. 공연히 헛수고만 했다. 시간을 갖고 연구하여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 접었다.
구피 물갈이하는 날이다. 날씨가 따뜻해져서일까 수족관의 물이 쉬 증발한다. 이틀 전에 받아 둔 물로 물갈이를 했다. 이것도 간단치 않다. 요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하는데 이 또한 귀찮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즐거움도 있으니 백수가 이것도 안하면 어쩔 것인가?
히터와 여과기의 전원을 먼저 꺼놓고 인조수초와 돌멩이를 꺼내고 물을 빼낸다. 약 30% 정도를 빼고 새로운 물로 보충했다. 유리 안의 물이 무척 깨끗해 보인다.
난로청소도 빠뜨려서는 아니 된다. 펠릿난로임으로 주기적으로 재를 꺼내어 정리를 해야 한다. 유리문도 물 묻은 휴지로 깨끗이 닦아야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신문지를 깔아놓고 난로 안의 재를 털어내고 고운 재는 밖에 있는 낙엽 부엽토 통에 넣어준다. 좋은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옆집의 김 교수 내외와 장 여사의 친구가 함께 놀러왔다. 제천에 집을 구입했다는데 야생화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가 보다. 마침 준비해두었던 꽃씨들을 주었다. 패랭이, 천인국, 에키세니아 등 파종관리가 쉬운 꽃씨 다섯 종류를 꽤 많이 줬다. 잘 자랄 것이다.
김 교수가 집에 사과나무가 있는데 열매가 열리지도 않고 키 크고 집과 어울리지 않아서 공원 쪽으로 옮겨 심을까 한다기에 얼른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병꽃나무 파낸 곳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마땅한 나무가 없어 구덩이만 덜렁 파놓은 상태였다. 나무를 사려면 4~5만원은 들 것이고 손자가 간혹 사과나무가 정원에 있느냐고 몇 차례 물어 와서 사과나무를 사서 심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높이가 2미터는 족히 될 성 싶은 사과나무다. 잘 키워야겠다.
밖에 있는 수전파이프가 동파로 인해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며칠 전부터 고민하던 차에 설비업체에 전화를 해봤지만 바쁜가 보다. 연락이 없다. 쓰다 남은 실리콘이 있어서 임시방편으로라도 이를 물이 새는 수전파이프에 둘러치면 어떨까하고 궁리하던 중에 한 번 더 내 실력으로 조정해보고 안되면 다시 설비업체에 연락하기로 했다.
뚜껑을 열고 닫기를 몇 차례하고서 꽉 조였더니 감쪽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날듯이 기뻤다.
파이프에 물이 새서 솟구치면 정원 일을 할 수가 없다. 물 낭비도 낭비지만 온 사방이 물 천지가 될 판이어서 고치기 전에는 물주기를 할 수가 없었는데 내가 반 기술자가 된 기분이었다.
창고에 넣어두었던 호스도 꺼내어서 컨넥트를 연결하고 점검을 했다.
오랜만에 백수가 바쁘게 뛰어다닌 하루였다.
@2021년3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