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5-
남양터널과 남양의 랜드마크 남양해수풀장
2년 만에 찾은 남양은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남양리보다는 골계라고 자주 불렀던 것 같다. 행정리를 사용하는 지금의 ‘남양리’보다는 예전 자연마을 이름인 ‘골계’가 내게는 더욱 정겹다. 남양3리로 불리는 통구미도 마찬가지이다. 터널이 없던 옛날 가끔 친구들과 통구미 초등학교 뒤쪽 오르막길을 넘나들었던 남양이다.
남양항에 멋진 해수 풀장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에 소개된 그림에는 야자수가 있는 남쪽 나라 어느 관광지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어서 가 보고 싶어졌다. 도동에서 남양을 가려면 지금은 차로 통구미 터널을 지나쳐야만 한다. 바위를 뚫어 원웨이로 만든 터널이어서 입구에서 당연히 교차 신호를 받아야 함에도 내가 탄 버스는 멈춤 없이 그냥 지나쳐 간다. 숨 막힐 듯 좁은 한 방향 터널이 밝은 조명이 있는 넓고 쾌적한 양방향 찻길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위:새로 개통된 양방향 남양터널, 아래: 옛 단일방향 구 터널
이 구간은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신호를 받고 진입해야 하는 1차선 터널이었다. 게다가 1터널과 2터널 사이는 지반이 약해 태풍이 닥치기라도 하면 도로가 떠내려가 교통이 통제되곤 했던 구간이다. 이곳이 이렇게 짧은 시일에 459m의 2차선 ‘남양터널’로 바뀌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터널을 지나 몇 분이 지났을까 남양1리 광장이 나타났다. 교통에 방해되고 미관을 해침으로 전신주를 누구의 비용으로 옮기냐로 한때 시끄럽던 남양 관문에는 어느새 깔끔하고 넓은 광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쉼터인 육각형 정자와 남양1리 마을회관과 어민회관이 있는 5층 건물이 에워싸고 있으며 길 건너에는 멋진 버스 승강장과 ‘남양해수풀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남양리 마을 원형광장
아직 5월임에도 비키니수영복만 걸친 묘령의 여인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연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야자수 파라솔 옆을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다. 해수풀장이 이제 막 준공된 터라 물도 없는데 혼자서 마냥 즐거운 웃음을 띠고 뛰어다니는 것이 궁금해 물어보니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유튜버들에게도 방송 소재가 될 만큼 벌써 입소문이 났나 보다.
남양해수풀장 전경
남양항을 마주하고 있는 투구봉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남양 해변은 옛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바다를 향해 포효할 것 같은 사자암의 늠름한 자태는 높은 방파제에 가려 초라한 바위로 전락한 지 오래고 풍요롭던 오징어잡이가 옛말이 된 지금 덩그렇게 높은 방파제가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숨이 막힐 듯하다. 그나마 남은 몽돌 해안이 있어 위안을 삼아야 할 처지인데 오징어덕장으로 활용되던 해안이 친수공간인 해수풀장으로 대변신을 한 것이다.
1970년대의 남양해변, 멀리 사자바위가 보인다
울릉군이 총사업비 75억여 원을 들여 해변에 조성한 해수풀장이다. 단순한 풀장이 아니라 해외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멋진 친수 공간을 만들어 냈다. 370여 평에 이르는 풀장과 경관 보도교, 현대식 화장실, 샤워시설, 4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등이 완비 되어있다. 주변에는 인조 야자수, 해송, 울릉도 고유종인 섬기린초, 해국 등으로 조경하고 휴게 데크, 파고라 4개소, 갈대 파라솔, 수십 개의 썬베드도 잘 배치되어 있다. 풀장에서 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 있도록 쪽문을 만든 설계자들의 센스도 돋보였다.
위 시계방향으로 풀장 안내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쪽문, 야자수파라솔, 샤워장과 화장실
풀장은 성인용, 어린이용, 유아용으로 세분화했고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 셈이다. 최근 울릉군에서 개발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나랑 별바다 보러 갈래’ 관광프로그램이 퍼뜩 머릿속에 그려졌다. 남양 밤바다에 별과 어화가 어우러진 바다를 배경으로 풀장 주변에 둘러앉아 발을 담근 채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수풀장이 불과 몇 해 전인 2020년 태풍 마이삭으로 남양항 일대가 초토화되었던 영상과 오버랩되면서 불안감도 들었다. 애써 만든 풀장이 혹여 강한 태풍으로 망가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닷속에 수중 방파제도 설치했고 삼각형 콘크리트 테트라포드로 풀장 주변을 탄탄하게 마무리 해둔 것 같아 남양해수풀장의 진가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 풀장을 감싸고 있는 테트라포드 아래: 태풍마이삭 당시의 처참하게 망가진 남양항
버스 승강장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누가 보아도 식당이나 카페 건물로 오인했을지 모른다. 관광섬 다운 발상의 전환 같아서 왠지 기분이 좋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넓은 공간 가운데 큰 책꽂이가 있고 할머니들 몇이 모여 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랑방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위의 시계방향으로 화장실을 겸비한 버스 승강장과 실내 그리고 옛 버스 정류소 모습
남양항에서 조금 올라가 ‘우산국박물관’과 ‘남서일몰전망대’를 찾아갔다. 2021년에 개관했다는 두 곳은 같은 건물에 입구가 마련되어 있었고 32억 원이 소요되었다는 전망대 모노레일은 179m의 거리와 38° 경사도에 편도 4분에 운행한다고 한다. 너무 좋은 경관이었다. 맑은 날에는 강원도 삼척이나 울진 해안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해넘이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위: 일몰전망대, 아래: 우산국박물관
166억여 원을 들여 만든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전시관이 1동, 3개의 수장고와 학예연구실을 겸비한 박물관 수장고 1동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관 1층은 우산국의 등장과 멸망까지의 이야기와 우산국 설화를 시청할 수 있고 2층에는 우산국의 유적분포와 유물 등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멋진 건물에 비해 어쩐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으나 조금씩 보완해 갔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울릉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증표인 것 같아 흐뭇했다.
위쪽 시계방향으로 남양하나로마트, 서면보건지소, 서면자치센터, 교사용 기숙사
작은 동네지만 뭔가 여유 있고 풍요로운 마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안쪽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남양천이 깔끔하게 잘 정비 되어있다. 지난 3월에 개점한 하나로마트가 지척에 있으며 점내는 풍성한 물건들로 꽉 차 있다. 조금 올라가니 수도권에서의 어느 건물과 다를 바 없는 멋진 건물 하나가 준공을 앞에 두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면보건지소인 것 같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2층의 대형 서면자치센터 규모에도 놀랐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주민들의 각종 모임이 가능한 공간을 연상할 수 있었다. 남양초등학교 옆 궁도장을 내려오자 4~5층 건물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도대체 건물의 용도가 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학교 선생님들의 기숙사라고 했다. 육지에서 발령받아 울릉도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주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공사였다. 학생 수가 줄어 폐교가 늘어가는데 멋진 기숙사라니 상전벽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양은 정말 많이 변하고 있었다. 농어업에 주로 종사하던 주민들에게 이런저런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모든 관리를 관에만 의존하지 말고 민관이 합심하여 몽돌해변과 풀장도 늘 깔끔하게 운영하고 각종 시설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고 또 닦아 관광객과 주민의 환호가 절로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남양은 확실히 어제의 남양이 아니었다.
헤럴드경제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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