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 염불
12월31일, 송년을 고향후배 집에 모여 부부간에 조촐한 파티를 했었기 때문일까 새해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새벽 한시가 넘어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오늘이 새해가 맞느냐고 아내에게 몇 차례나 되물었다.
아침에 느지막하게 눈을 뜨고 보니 새해의 새로운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오늘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모든 사회활동이 시작되는 날이다.
TV를 켜보니 해맞이를 하는 모습 이외에는 정치활동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것 같다.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어떠하고, 반기문이 곧 들어온다느니, 그가 국내거주 5년이 아니 되어 자격이 없다느니, 정유라가 덴마크에서 체포되었다느니 등등 이 나라가 마치 정치에 미친 듯 수 개 월째 정치판 소식만 내보내고 있다.
정유년 올 새해에는 이건 꼭 하리라고 생각한 것이 없다는 것에 나 스스로 소스라쳐 놀랐다.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매년 되풀이 되었지만 올해는 하루에 한 시간씩 영어회화에 게을리 하지 않겠다느니,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았던 막걸리 마시기를 이틀에 한 번씩으로 줄인다던가, 블로그활동에 충실히 하겠다던가...
그냥 쉰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쫓기듯이 살아 온 지난 세월동안 어느 날 이렇게 편안해 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 맛있는 것 먹고 대궐 같은 집에 쉬면서 요트도 한 대 사서 오대양으로 다녀보기도 하고 북 유럽과 남극에 다녀올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님에도 어쩐지 그냥 편안하다. 편히 쉬는 것을 내가 즐기는지 모르겠다. 생각나면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도 다녀오고 막걸리 떨어지면 슬리퍼 신고 가계에 다녀오는 것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편안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뒤쪽에 있는 관음사에 안개가 가득 끼어있다.
아침임에도 법당에서는 경 읽는 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온다. 신발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로 봐서 스님과 신도 한 사람이 나라의 안위를 위한 기도인지 신도의 바람을 염원하는 것인지 어른거리는 불빛 아래에 염원을 담고 있다.
진지한 염불 속에 삶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좋다.
올해는 무슨 결심을 해볼까, 매년 같은 결심이 나올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
단 한 가지, 하루 막걸리 두 병에서 한 병으로 줄이는 결심을 귓전에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얹어서 조심스럽게 염원해보고 싶다.
@2017년1월2일(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