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꽃
세월이 정말 무심하다.
2016년이 시작 된지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력을 몇 장만 남겨두고 있다.
어제는 울릉도에서 올라 온 친구와 서울에 사는 몇몇 친구들이 종로에서 만나 술 한 잔 걸쳤는데 이 친구가 폐암초기여서 치료차 올라왔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얼굴도 약간 핼쑥해 보였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영향일 것으로 짐작이 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오늘은 “딱 한 병만!” 하고 작심을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막걸리 두 병 째 손이 가는 날이 더 잦아들고 있다. 이삼일 마시고 한 사흘 쉬는 게 좋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수 없이 듣기는 하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다.
벌어 놓은 돈도 없는데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라고 때로는 걱정도 된다. 이걸 생각하면 정말 큰 결심을 해야 하는데 실천이 어렵다. 뭔가 계기가 있어야할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스스로 자문도 해본다.
나무가 너무 무성해서 정원 안에 있는 나무들을 과감하게 다 잘라내었다. 며칠 째 조심스럽게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톱질하고 있다. 벚나무, 황목련, 마가목, 서양자두, 자엽자두, 밥풀떼기, 꽃복숭아, 서양배, 백화도, 산수유 등 꽤나 많이 잘라내었다.
이제 남은 건 너무 오래된 큰 벚나무다. 10여 년 전에 잘라내었는데 어느새 큰 나무로 변해 작은 나무들의 그늘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허리도 좋지 않아 약간은 위험하지만 조심스럽게 조금씩 잘라내어야겠다.
팔당호에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우리 집 정원을 밝게 해주는 마지막 몇몇 꽃들이 고맙기만 하다.
@2016년10월11일
해국
뻐꾹나리
단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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